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 탄트 (문단 편집) ==== 첫 번째 임기 (1961 ~ 1966) ==== [[파일:u-thant-640x360.jpg]] '''첫번째 임기 당시의 우 탄트''' 우탄트가 임기를 시작할 당시엔 국제 정세가 상당히 긴박했다. 왜냐하면 당시 세계는 [[쿠바]]를 놓고 대치하는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에 근접한 교전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 근방의 [[서유럽]] 진영 땅에는 [[미국]]의 [[핵탄두]]가 [[소련]]을 향해 상당수가 배치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소련]]을 향해 [[핵]]을 발사해 초토화 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소련]]의 정치권 내에서도 위기감이 안들래야 안 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핵전력으로 비교를 해봐도 [[미국]]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따라서 [[소련]]은 이에 대응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고, 핵탄투를 배치함으로써 일종의 힘의 균형을 이루려는 의도였다. 이에 [[미국]]은 당연히 반발..을 안 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이 문제를 두고 격렬히 대치하고 있었던 것.]. 이 상황 속에서 [[1962년]] 10월 22일 [[미국]] [[백악관]]과 [[미합중국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쿠바]] 상공을 촬영한 정찰 사진을 공개하였다. 그리고 나서 [[존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로 향하는 [[소련]] 선박들로부터 모든 공격적인 무기들을 제거하기 위해 해군의 "검역"을 명령했다. 한편, 소련 선박들은 검역 구역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렇게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탄트는 이러한 상황에서 중재와 협상을 위해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탄트는 [[미국]]에게 [[소련]]의 미사일 철거에 앞서 사전에 긴장 행위를 부추기는 침략적 행위를 일단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존 F. 케네디]]가 이 제안을 고려할 것을 시사했다. 이에 [[흐루쇼프]]가 환영하면서 협상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런 협상의 기초를 토대로 [[유엔]]의 중재하에 [[미국]]과 [[소련]]의 협상이 진행되었고 [[존 케네디]] 미 대통령이 탄트의 제안에 응하면서 [[흐루쇼프]]는 [[소련]] 핵전력이 [[쿠바]]내에서 계속 증강되는 것을 일단 멈추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상황을 감시하기 위한 [[미국]]의 [[정찰기]]가 [[쿠바]]에서 격추되면서 다시 대치국면으로 바뀌어 버렸다. 당시 [[존 케네디]] 대통령은 [[미합중국 국방부 청사|펜타곤]]과 합창의장으로부터 [[쿠바]]에 [[미군]]을 투입할 것을 강하게 촉구 받았지만, [[쿠바]] 공습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존 F. 케네디]]도 세계대전에 준하는 교전을 원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존 케네디]]는 우탄트가 이 상황의 중재를 맡아줄 것을 강하게 희망했다. 오히려 [[미국]]이 [[소련]]으로부터 [[도발|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을 받아 놓고도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제스쳐를 취한 것.[*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제스처라는 거지, 반발 성명이라든지 무력시위라든지 전쟁이 아닌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발의 목소리를 내긴 냈다. 고로 할 건 다했고, 그래도 상태 유지는 원하지 않았기에 협상의 문을 열어 놓은 것] 아마 [[소련]]과 면대면으로 협상하기가 많이 힘든 것으로 판단하여 [[유엔]]의 중재가 전보다 더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협상은 다시 재개되었다. [[미국]]은 [[소련]]에게 [[모스크바]]를 사정권으로 두는 [[핵탄두]]를 해체하고[* [[터키]]엔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를 사정권에 두는 [[핵탄두]]를 설치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선 최대의 위협이었다. 따라서 [[소련]]도 [[워싱턴 D.C.|워싱턴]]을 사정권으로 두는 미사일을 설치하려고 했다. 그것은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 형태로 나타났고 이를 두고 격렬히 대치했던 것. 특히 이 [[터키]]의 미사일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었음.], [[쿠바]]를 침략하지 않는 것을 [[소련]]에게 제안한다. 추가로 [[소련]]이 격추했던 [[미국]] [[정찰기]]의 기체 반환에 대해서도 협상할 것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탄트의 중재 아래서, [[미국]]은 소련의 최대 위협인 [[터키]]에 설치된 [[핵탄두]]를 해체하기로 한다. [[소련]]은 이를 대가로 [[쿠바]]에서 철수하고, 격추한 [[정찰기]]의 기체를 반환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 따라서 두 양 [[강대국]]의 전쟁은 피할 수 있었다. 우탄트는 [[콩고 내전]]에서도 자신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내전을 종식시켰다. 심지어 그는 내전 종식을 위해 무력을 쓰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탄트가 [[콩고 내전]]을 직접적으로 해결하기 전에 반군이 계속 [[유엔 평화유지군]]이 움직이는 곳마다 집중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에 [[유엔 평화유지군|평화유지군]]의 피해가 막심했다. 이에 우탄트는 [[콩고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작전명 그랜드 슬렘(GrandSlam)"을 발동하면서 [[콩고]] 정부군의 반군 진압을 촉진 시켜주었다. 결국 반군은 진압되었고 탄트는 [[콩고 내전]]을 효과적으로 종식 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그의 첫 번째 임기는 끝이 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